작성일 : 14-02-10 20:49
Mind & Body Change Program으로 새로운 생명의 희망을 전도하는 암·난치병연구원 손태경 원장의 전하는 말씀
 글쓴이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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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 니시의학을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1년 당시 69세였던 부친은 악성림프종 및 요로결석이라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부산 백병원에 입원하여 조직검사와 수술, 항암투여 과정을 거치면서 부친은 삶의 의욕을 잃어갔으며 육체는 피폐해졌고 결국 병원은 부친의 치료를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족들은 여러 가지 물품과 식품을 사들였고, 검증받지 못한 곳들에서 생활도 해보았지만 몸과 마음은 더욱 망가져 점차 포기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어느 누구로부터 암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상담을 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수소문 끝에 일본의 와타나베 의원을 소개받았지만 외국이라 입원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부친의 몸은 이미 장례절차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각했으나 부친의 단호한 결정으로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일본으로 건너가셨습니다. 처음 본 와타나베 의원의 전경은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상상했던 첨단 의료장비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동네 의원보다도 못한 시설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와타나베 쇼 박사(이하 와타나베 의원)께서 부친을 상담 및 진찰하시고는 ‘3개월이면 치료가 끝날 것’이라고 말씀 하신 것이었습니다. 믿기지도 않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확신에 찬 와타나베 의원의 한 마디는 희망을 품게 했으며 모두를 감격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개월만 열심히 치료하면 살 수 있다니... 부친은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대체의료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몸이 회복되는 속도는 놀라웠습니다. 헌신적인 와타나베 의원의 진찰과 세심한 직원들의 보살핌, 입원한 환우들의 따뜻함과 배려는 부친에게 삶의 애착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3개월 뒤, 부친은 혼자 양손에 가방을 들고 김해공항에 나타나셨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과 감동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합니다. 부산에 돌아오신 후 백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암은 사라졌고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부친의 병환을 계기로 저는 놀라움과 충격을 받았고, 전인치료와 통합의학에 대한 관심은 물론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Q2 : 우리나라 의료계에 니시요법을 정확히 알리고 제대로 실천해 오신 선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후 와타나베 선생과의 인연을 이어오다가 10년 후 연수를 결정하게 되었으며, 와타나베 의원을 찾는 우리나라 환자들이 많았던 탓에 진료통역을 도맡으면서 다양한 암과 난치병에 대한 상담 및 진료, 임상을 직접 배우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연수를 받으면서 병원 경영 전반을 비롯해 니시요법 및 환우 케어 등의 노하우를 꼼꼼하고 철저하게 전수받을 수 있었습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자청하여 입원실에서 내외국인 환우들과 매일같이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다 시피하며 많은 것을 배워나갔습니다. 책으로는 알 수 없는 환우분들의 질병과 원인에 대한 문제점, 특히 성격과 사고에 따른 스트레스, 불만, 분노와 같은 내적 치유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삶에 대한 간절함과 진지한 이야기들을 나눈 시간들은 지금의 저에게 가장 큰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와타나베 의원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연수가 되었으며, 3년 이상의 가장 오랜 기간 연수받은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약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와타나베 의원 역사상 최초로 분원자격 인증서를 받은 것으로서 이후 지금까지 10여 년 간 양한방과 함께 통합치유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